Live Forever

2015년 10월에 시작한 수험생활. 이번 해 7월 31일 9급 공채 최종합격 통보를 받으며 약 1년 6개월간의 수험생활을 끝냈다.

사실 9급 시험이 합격했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만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 대단하지 않은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1년 6개월 동안 공부하면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힘든 시간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수기를 작성해 본다. 특정 학원,강사 홍보 목적 전혀 없이 순수하게 내가 느낀 감정과 했던 경험을 토대로 쓰겠다.

1)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 먹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다니고 있던 학교와 전공에 대한 불만족, 내 능력에 대한 회의, 공무원이신 아버지 영향 등등.
근데 나는 고등학교 3년 다니는 동안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고 대학교에 가서 한 순간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기본적으로 50:1의 경쟁률이 나오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아마 부모님을 포함한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은 '저러다 몇 년 하고 말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역시도 노베이스에서 시작하는 막막함 때문에 답답하긴 했지만 나에 대한 믿음 하나는 처음 그 순간부터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내가 공부해서 시험보는 건데 내가 나를 믿을 수가 없으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수험생처럼 공부하는 것'이었다.
몇 년 동안 한 두 시간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 내가 갑자기 하루 12-13시간 이상 공부하려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잠깐도 집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몇 년을 내가 이렇게 살았는데 갑자기 12시간을 집중해서 공부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나의 부족함을 깔끔하게 인정했다. 수험생에겐 공부하는 게 습관인 만큼 앞으로 점진적으로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시간이 늘고 핸드폰을 보는 횟수도 줄어든 일반적인 수험생이 되어갔다.

2)
노베이스였던 만큼 공부를 시작할 때 너무나 막막하고 힘들었다. 어느 한 과목도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서 매일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칠 때마다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볼 때마다 새로웠다. 솔직히 여기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도저히 가망이 보이지가 않으니까.
그래서 이때쯤 해서 합격수기를 많이 찾아봤던 것 같다. 그것뿐만 아니라 xxx 변호사의 사시 합격수기 등 여러 고시 합격수기도 읽어봤는데 레벨 차이가 존재하고 시험방식이 조금씩 다름에도 합격한 사람들은 모두가 '회독'을 강조했었다. 또한 내가 수강한 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한국사 강의를 1회독만 하고 기출문제가 술술 풀린다면 그 사람은 다 때려치우고 한국사 연구하러 가야되는 사람이다'
또 강사들이 수험생들에게 공부자극을 할 때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을 자주 인용한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속담과 함께.
인간이 망각을 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망각하기 전에 복습하고 또 복습해야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존나게 참고 공부했다. 진짜 정말 많이 참고 했다. 각 과목 5회독을 하고 나서야 이제 좀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회독을 하니까 많이 달라진 것을 경험하면서부터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반복만이 살 길이다.

3)
구꿈사나 공드림 같은 곳을 가 보면 늘 올라오는 글 중 가장 대표적인 게 '합격하려면 노량진에서 해야되나요, 집에서 인강으로 해야되나요?' 이다.
또 노량진에서 맨 앞자리에 앉기 위해 새벽 두세시부터 줄을 서서 공부하면 합격하냐는 글도 많이 올라오는데 결론은 합격할 놈은 어떻게 해도 합격하고 안 될 놈은 어떻게 해도 떨어진다.
현장강의와 인강은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 역시 개개인마다 성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현장에서 공부가 더 잘 되는 사람이 있고 인강을 들을 때 더 잘 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만 맹목적으로 믿고 '인강만 들으면 떨어져..' '노량진 가면 무조건 떨어져...' 이런 식으로 혼자 결론짓는 것이 가장 무식한 짓이다. 노량진에 갈 수 있는 여력이 있으면 한 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직접 경험해보고 공부해보고 장점을 잘 취합해서 적절하게 활용하면 된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한 친구는 노량진까지 1시간 30분이 걸리는 곳에 살았지만 매일 아침 8시까지 오기 위해 5시에 일어났고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에 가면 12시는 훌쩍 넘었다고 했다.
이 친구는 자기한테는 현장강의가 맞다고 생각해서 그런 어려움을 다 참아내고 1년을 버티고 최종합격했다. 노량진이냐 인강이냐는 전적으로 본인이 깊이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문제다.

4)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서, 나는 하루에 12시간-13시간 정도를 공부했다. 정말 휴식시간을 최소로 잡고 가장 많이 했을 때가 13시간 45분 정도였던 것 같다.
암기문제가 많이 나오는 시험 특성상 공부시간을 10시간 이상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저 12시간 중에 3시간을 국어,영어 단어 암기하는 데 썼고 그밖에 한국사 같은 과목들의 암기해야 할 내용을 암기하는 데에 하루에 1-2시간은 할애한 것 같다. 그러므로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문제를 푸는 그런 공부는 많아야 8시간이 되지 못했다.

아침 7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하면 12시간 정도 되는 거 같았다. 그러다보니 따로 시간 내서 운동하는 게 불가능했다. 시험 준비하면서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고 하루종일 처박혀서 공부만 하다보니 몸이 급속도로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시간은 없고 어쨌든 운동은 해야하니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집이 13층에 있어서 집에 갈 때마다 뛰어 올라 갔다. 남부고시학원은 8층,9층 수업도 많아서 계단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꽤 운동이 된 것 같다. 그 덕분인지 다행히 수험생활 하는 동안 건강상의 문제는 없었다. 수험생이 건강 잃으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

5)
노량진에서 공부하다보면 스터디에 관한 걸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9급 시험을 준비하는 데 스터디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 했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객관식 시험을 준비하는데 스터디할 게 뭐가 있지? 정답이 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고 그걸 회독해서 이해하고 외우기만 하면 된다. 굳이 스터디할 이유가 없다.  영어단어나 한자 관련 스터디도 사실 별로라고 생각한다. 영어단어 문제만 4문제가 나온다. 이것만 해도 20점이고 이 문제들 다 틀리면 절대 합격 못 한다. 한자 역시 마찬가지.
이렇게 앞으로 내 수험생활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것들을 혼자 못 외우는 박약한 의지를 가지고 무슨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처음 공부 시작했을 때, 아직 단어 외우는 거에 익숙하지 않을 때만 잠깐 하고 빨리 발을 빼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외에도  밥만 같이 먹는 밥터디나 공부시간 인증 스터디 같은 게 존재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난 수험생활 중에는 있는 인연 잘 지키고 새로운 인연은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게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6)
이 글의 첫 부분에서 나는 나에 대한 믿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고 적었는데 아마 그 믿음을 유지하지 않았으면 합격하지 못 했을 거 같다.
그 믿음이라는 게 메날두를 보는 거와 같은 확실한 믿음이 아니었다. 수험생활 할 때 난 항상 불안감 속에서 떨고 있었다. 그 불안감이 극도로 커졌던 3월쯤에는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고 꿈 속에서 마킹실수를 해서 개좆같은 기분으로 새벽에 깨기도 했다. 지금 당장 성적이 안 나와서 이 성적 그대로 받으면 떨어지는 것이 확실해서 늘 불안했지만 시험 전 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무조건 합격한다는 막연한 믿음이었다. 어찌보면 자기최면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렇게라도 해야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어차피 안 될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엔 하루 12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7)
 이 시험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수험적합성'이라고 생각한다.
1차원적으로 생각하면 각 과목 기본서를 통으로 외우면 될 것 같은데 인간은 절대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 책에 있는 내용 중에서 시험에 안 나올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시험에 나올 것들만 확실하게 공부해야 한다.
이 문제는 한국사에서 특히 심하다. 예전 2008,2009년에 한국사 시험이 극도로 어렵게 나온 후로 한국사 강사들이 자기 방어를 위해 기본서에 별의별 병신 같은 것들을 다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래서 책이 너무 두꺼워졌고 강의도 쓸데없이 길어지기만 했다. 하지만 2011년 이후로 9급 시험은 고등교과과정을 준수해오고 있다. 간혹 교과과정을 벗어나는 내용이 출제되곤 하지만 그런 문제는 수험생이 공부해서 맞히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거 한 두개 버리고 나머지 문제 다 맞히면 90점 95점 받을 수 있다. 5과목 평균 90점을 받으면 합격하는 시험이다. 이상한 거에 매몰돼서 아까운 시간 날리지 말고 다음 시험에 무조건 출제될 것으로 확실시 되는 것들을 무조건 맞히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게 수험적합성이다.
같은 자습실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수험과 관련 없는 공부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한 사람이 있었는데 결국 이번 해엔 합격하지 못 한 것으로 알고 있다.

8)
공부할 때는 그냥 해야 한다. just do it.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똑같이 해야 한다.
나 역시 눈물이 나면 눈물이 나는 대로 하고 딴 생각이 들면 딴 생각을 하면서 공부했다. 왜냐하면 공부하는 거 말고는 이 개 같은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전무했으니까. 공부하는 데 이유 없다. 아무런 목적성이 없는 시험이다. 그래서 이 시험을 공부한다고 일반 사기업 취업하는 데 도움 되는 것도 없이 시간만 흘러간다. 그러니까 아무생각 하지 말고 그냥 해야될 것만 해야 한다.

아마 내 수능 성적을 얘기하면서 상담을 했더라면
열에 아홉은 힘들 거라는 얘기를 했을 거다. 그만큼 나는 부족한 게 정말 많았다. 그 부족함을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1년 6개월 동안 정말 노력 많이 했다.
노력이란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공무원 시험 점수만큼은 노력에 비례한다.
그리고 운칠기삼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그 운이라는 건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어떤 행운도 따르지 않는다.
내 노력과 더불어 행운이 따른 결과는 국가직 9급 최종합격, 서울시 일행 9급 필기합격이었다.
서울시는 필기합격선보다 25점 높은 점수로 합격할 수 있었다.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너무 힘들다고 좌절하지 말고 마킹 다 할 때까지 긴장 늦추지 말자. 나는 분명히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정말 두서 없이 글을 막 썼는데 이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행운도 같이 따르면 정밀 좋을 것 같다.